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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의 야간 서점 체험기 새벽 2시에 책을 고르다

by nangdream 2025. 6. 22.

도시가 잠든 시간에도 여전히 깨어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여행자의 마음을 이상하게도 안심시켜줍니다. 일본 오사카에는 그런 공간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새벽 2시, 나는 ‘책을 고르기 위해’ 문을 나섰고, 그 시간이 어떤 위로가 되는지를 이 서점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오사카의 야간 서점 체험기 새벽 2시에 책을 고르다

 

24시간 문을 여는 서점, 그 이상한 위안

 

오사카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지역, 번화한 도톤보리와는 거리가 있는 주택가 골목을 지나 도착한 야간 서점. 정확한 이름은 지유도쿠쇼카이, 직역하면 ‘자유로운 독서 모임’ 정도가 되겠지만, 이곳은 이름처럼 단순한 서점은 아닙니다. 24시간 운영되는 독서 라운지와 독립 서점, 그리고 공유 오피스가 결합된 공간으로, ‘깨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쉼터’를 지향합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따뜻한 조명 아래 펼쳐진 책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생각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도’는 크고 명확했습니다. 이곳은 흔한 베스트셀러 위주가 아닌, 주로 독립출판물, 문예지, 실험적인 산문집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책장은 마치 누군가의 개인 서재처럼 느껴졌고, 책의 배열도 철저하게 취향 중심이었습니다.

그날은 이미 새벽 2시를 넘긴 시간이었는데, 공간 안에는 나 외에도 두 명의 손님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어폰을 낀 채 메모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쇼파에 앉아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서로 말 한마디 없이 같은 공간에 머물며 고요를 나누는 방식. 그것은 여느 낮의 카페보다 훨씬 정제된 분위기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공간의 인상적인 점은, ‘시간’에 대한 감각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시계를 보지 않게 되고, 지금이 밤인지 새벽인지조차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책을 고르면서 느끼는 감각 종이의 질감, 문장의 결, 문득 머리에 맴도는 음악 한 소절 그런 것들이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낮에는 느끼지 못한 감정이 새벽에는 또렷해지는 것처럼, 야간 서점은 감정을 재조정하는 시간의 틈이 되어줍니다.

 

책을 고르는 속도가 달라지는 시간

이 서점의 특징 중 하나는, 책을 고르는 행위가 빠르게 선택하는 소비가 아니라 천천히 머무는 경험이라는 점입니다. 조용한 음악과 미세하게 어두운 조명 아래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자연스레 속도가 느려집니다. 평소 같았으면 제목만 보고 지나쳤을 책들도 이곳에서는 몇 쪽을 넘겨보게 되고, 문장 하나하나가 유난히 또렷하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책장에는 간단한 카테고리 대신, 감성에 따른 분류가 붙어 있었습니다.
예: 읽고 나면 마음이 투명해지는 책, 잠들기 전, 오늘을 정리해주는 산문들, 누군가의 상처를 읽는 밤

이런 안내는 단순한 장르 구분을 넘어서, 내가 지금 무엇을 읽고 싶은 사람인지를 되묻게 만듭니다. 덕분에 서점에서의 시간은 책을 찾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어갑니다.

이곳의 큐레이션은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책마다 서점 주인이 직접 쓴 메모가 붙어 있는데, 그 문장 하나하나에 읽은 사람의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산문집에는 이 책은 어쩌면 당신의 우울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않겠지만, 우울을 조금 덜 외롭게 만들어줍니다 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 짧은 문장을 보고 나서, 나는 그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야간 서점에서 책을 고른다는 건, 그 시간의 침묵과 어둠, 그리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자는 사이, 나만 깨어 있는 느낌은 이상하게도 고독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 경험처럼 느껴졌습니다.

 

책을 사지 않아도 괜찮은 곳에서 얻은 것들

이 공간에서의 인상 깊은 점 중 하나는, 책을 꼭 사지 않아도 환영받는다는 분위기였습니다. 입장료는 소정의 커피 한 잔 가격 정도이며, 2시간 이상 머물 경우에는 작은 이용료가 붙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책과 공간을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책을 구매하셨나요?라고 묻지 않고, 오히려 천천히 읽고 천천히 결정하라고 조용히 배려해주는 분위기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나는 책을 두 권 고르고도, 결제는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2시간 넘게 그 공간에 머물며 책을 읽고, 짧은 노트를 쓰고, 조용히 음악을 들었습니다. 공간을 나서기 전, 카운터에 앉아 있던 서점 운영자가 내게 말을 걸었습니다. 오늘 마음에 남은 문장이 있었나요?라는 짧은 질문이었지만, 그 말 한마디가 이 서점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이곳은 책을 팔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방식에 대해 고민한 결과물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 단지 책을 사러 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적인 회복을 위해 들르는 듯했습니다. 실제로 이곳을 두 번째 집이라 부르는 단골도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아무 말도 하지 않고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늦은 시간에도 깨어 있는 사람들끼리의 조용한 연대감. 오사카라는 도시의 따뜻한 기운이, 이 야간 서점에서 더욱 또렷하게 느껴졌습니다.


새벽에 서점을 찾아가는 일은, 단순한 야간 액티비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잠시 멈춰 서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자, 아주 조용한 방식의 여행이었습니다. 오사카에 가게 된다면, 붐비는 거리를 잠시 벗어나 이 조용한 서점에서 밤을 듣고, 책을 읽고, 나를 만나는 경험을 꼭 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