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욕심을 낸다. 하루아침에 삶을 바꿔보겠다고 다짐하면서 식습관, 수면 시간, 운동, 생산성 루틴까지 모든 걸 동시에 조정하려 든다. 그런데 그렇게 시도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안다. 결국 아무것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이번에는 정반대로 해보기로 했다. 단 하나의 루틴만, 그것도 아주 작고 단순한 것 하나로 시작해보자는 실험이었다.
선택은 단순하게, 반복은 정직하게
루틴을 바꾼다는 말은 거창하게 들리지만, 처음 시도할 땐 정말 작고 단순해야 했다. 나는 평소에 새벽에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했는데, 이를 한 번에 고치려다가 번번이 실패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목표를 단 하나로 정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물 한 컵 마시기. 이게 끝이었다. 듣기에 너무 간단해서 ‘이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단순한 행동이 반복될 수 있도록 만드는 환경과 태도였다. 전날 밤 물컵을 미리 침대 옆에 준비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딴짓하기 전에 바로 마시는 것을 습관으로 삼았다. 단순하니까 잊지 않게 되고, 작으니까 실패할 여지도 적었다. 그러면서도 그 행동 하나가 하루의 시작을 조금은 다르게 만들어줬다. 무엇보다 ‘계획한 행동을 내가 해냈다’는 작은 만족감이 그날을 조금씩 더 주도적으로 살아가게 만들었다. 인간의 뇌는 완료된 행동에 반응한다. 크고 멋진 목표보다, 실제로 완수 가능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에 더 큰 성취감을 느낀다. 이 원리를 경험으로 이해하게 되니 루틴은 무언가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내는’ 도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매일 물 한 컵을 마시는 이 짧은 루틴은 다른 어떤 행동보다 나를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그건 단순히 물을 마신 게 아니라, 오늘도 다시 삶을 ‘내가’ 시작했다는 감각을 되살려준 첫 번째 신호였기 때문이다.
작은 루틴이 전부를 건드리기 시작할 때
처음엔 하나의 루틴만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루틴을 지켜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연결 고리를 만들어냈다. 물 한 컵을 마시는 것에서 시작한 아침은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먼저 보는 습관을 줄였고, 그 덕에 출근 준비 시간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신기하게도 하루의 시작이 조용해지니 불필요한 분주함도 줄어들었다. 물을 마시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겨우 10초 남짓이지만, 그 짧은 행동이 일으킨 연쇄 반응은 하루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 책상에 앉을 때도 집중이 더 잘 되고, 야근 후에도 나를 위한 루틴 하나쯤은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하나의 루틴이 여러 행동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극하면서, 삶이 조금씩 정리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놀라운 건, 이 모든 변화가 ‘의식적으로’ 계획한 게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끌려 나온 결과’였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루틴이라는 건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한번 자리를 잡으면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오히려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지 않고 한 가지에 집중했기에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것 같다. 너무 많은 것을 동시에 바꾸려 하면, 하나라도 실패했을 때 전체가 무너진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하지만 한 가지는 지키기 쉬웠고, 지킬 수 있었기에 다른 루틴들도 ‘시도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작지만 강한 하나의 루틴이 무질서한 하루를 조용히 정리해주는 느낌, 이건 그 어떤 거창한 계획보다 현실적으로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꾸준함을 유지하는 힘은 결국 ‘의미’에서 나온다.
물 한 컵이라는 루틴을 30일간 유지하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어려웠던 건 ‘왜 이걸 계속해야 하지?’라는 순간적인 회의감이 들 때였다. 처음 며칠은 새로움과 뿌듯함이 있었지만, 10일쯤 지나자 지루함과 무의미함이 찾아왔다. ‘이걸 한다고 뭐가 달라지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루틴을 유지할 명분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이 루틴이 단지 물을 마시는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되새겨야 했다. 이건 단순한 생리적인 행동이 아니라, 내 하루를 내가 열고 있다는 의식이 담긴 행위였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를 인식하는 단 하나의 정지 버튼이었고, 외부 자극이 아닌 내 의지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감각을 매일 확인시키는 장치였다. 루틴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은 강한 의지나 동기 부여보다, 그 루틴이 나에게 어떤 정체성을 만들어주는지를 인식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물 한 컵을 마시며 나에게 묻곤 했다. 오늘 하루도 내 감각을 살아볼 준비가 되었는지, 내 시간을 내가 쓰고 싶은지. 그렇게 나만의 의미를 새기면서 루틴은 단지 반복이 아닌 ‘의식’이 되었다. 어떤 날은 그 물컵을 들기조차 귀찮았지만, 결국 마시고 나면 ‘나는 오늘도 나와 약속을 지켰다’는 안정감이 남았다. 그리고 그 감정은 단순히 하루를 지탱해주는 것을 넘어, 내 삶을 다시 통제하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조금씩 확장됐다.
한 가지 루틴을 바꾸는 실험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느리게 흘러갔다. 하지만 그 변화는 작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무너져 있던 생활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시작은, 오직 ‘작고 확실한 하나’였음을 지금은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