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이라는 단어는 늘 ‘성공한 사람들’의 일상에서나 들리는 말이었다. 나는 스스로 꽤나 게으르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나름의 규칙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삶이 제멋대로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바쁜 건 아닌데 늘 시간이 부족했고, 계획을 세우기는 하는데 매일 틀어졌다. 그런 날들이 몇 달째 반복되자, 어쩌면 내 삶엔 '루틴이 없다'는 사실보다 '루틴이 문제다'라는 가능성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언제부터 입에 붙었을까
매일 똑같은 하루를 반복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잠들기 전까지, 하나의 일도 집중해서 끝낸 적이 없는데도 바빴다. 카페에서 일하려고 나가도 자리만 잡으면 핸드폰부터 들게 되고, 퇴근하고 나면 오늘 하루도 애매하게 지나갔다는 생각에 씻기도 전에 눕게 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사실 할 일을 미뤘을 때의 자기 위안 같은 것이었는데, 어느샌가 이 말이 입에 달라붙었다. 주말엔 푹 쉬면 되지 싶었지만 정작 주말은 잠을 자거나 TV를 보다 끝났다. 이상하게도 휴식은 더 무기력함을 남겼고, 반복되는 이런 생활이 쌓이자 ‘문제는 나’라는 자책이 시작됐다. 가끔씩 누군가 루틴을 바꿨더니 삶이 달라졌다는 글을 보면 그게 진짜일까 싶었고, 그보다 먼저 든 생각은 ‘나한테도 그런 변화가 가능할까’였다. 이 불규칙한 무기력의 반복에서 빠져나오려면 지금까지의 패턴을 뒤집는 것이 필요했고, 그 첫걸음으로 루틴을 진짜 한 번 바꿔보기로 했다.
변화가 아니라 회복을 원했다
사실 루틴을 바꾸겠다고 마음먹을 때는 거창한 목표가 있던 건 아니었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싶다거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의욕도 없었다. 다만 자꾸 흐트러지고 있는 내 일상의 중심을 다시 잡고 싶었다. 루틴을 만든다는 건 스스로를 통제하고 관리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매일 반복되는 작은 행동이 삶에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이전에는 뭔가를 바꾸려 할 때마다 너무 많은 걸 한 번에 하려다 실패했다. 식단 조절에 운동, 아침 기상, 플래너 작성까지 동시에 시도하면 며칠은 멋지지만 결국 일주일을 못 넘기고 무너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나만 바꾸기로 했다. 예를 들어 하루 30분 독서, 혹은 아침에 침대 정리하기. 작지만 명확한 목표를 정하고 나니 의외로 부담이 줄었다. 변화보다는 회복에 가까운 접근이었고, 이건 내게 꽤 맞는 방식이었다. 무언가 거창하게 바꾸고 싶은 마음은 잠시 접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루틴이 무엇인지부터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시작된 셈이었다.
변화의 시작은 ‘무엇을’보다 ‘왜’에서부터
루틴을 만든다고 했을 때 처음엔 ‘무엇을 할까’에만 집중했다. 운동을 할까, 공부를 할까, 글을 쓸까. 그런데 그렇게 정한 루틴은 며칠을 넘기기 어려웠다. 하고 싶지 않은 날엔 금세 흐트러졌고, 조금만 피곤해도 ‘내일 하지 뭐’ 하며 뒤로 밀렸다. 결국 깨달은 건 루틴의 핵심은 ‘무엇’보다 ‘왜’에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은 이유는 단순히 남들보다 부지런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시간의 통제권을 내가 갖고 싶어서였다. 퇴근 후 10분 스트레칭을 루틴으로 정한 것도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돌보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유가 분명하니 행동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단순한 반복이 아닌, 나의 삶에서 빠뜨리고 싶지 않은 감각을 되찾기 위한 도구로서 루틴을 바라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하루의 태도 자체가 바뀌었다. ‘왜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시작한 루틴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 되었고, 이건 어떤 체크리스트보다 오래갔다.
이 실험의 시작은 특별한 목표가 아니라, 삶의 감각을 되살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루틴은 무언가를 해내는 수단이 아니라, 나를 다시 만나는 방식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꼭 하나의 루틴을 시작해보길 권하고 싶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