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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뒷골목에 숨은 독립 서점 3곳

by nangdream 2025. 6. 19.


파리는 예술과 문학의 도시로 불리지만,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곳은 대형 서점이나 유명한 문학 명소에 한정되곤 합니다. 그러나 진짜 파리의 책 문화는 뒷골목, 작은 간판도 없는 독립 서점들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현지인들이 조용히 추천해준 세 곳의 서점을 찾아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책과 문화를 사랑하는 모습을 직접 경험해보았습니다.

파리 뒷골목에 숨은 독립 서점 3곳

Le Monte-en-l'air 

파리 20구에 위치한 Le Monte-en-l’air는 외관부터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진한 회색 외벽에 커다란 벽화가 그려져 있고, 입구엔 작은 현수막 하나만 달려 있어 처음에는 카페인지 갤러리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이 서점은 철학, 예술, 사회비평 등 일반적인 베스트셀러 코너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비주류 출판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입장하면 바로 느껴지는 건 책 냄새가 아니라, 공기 중에 감도는 예술과 저항의 분위기입니다.

서점 안은 미로처럼 구성되어 있고, 공간의 구획마다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만화책 섹션은 프랑스식 그래픽 노블인 ‘Bande dessinée’로 채워져 있고, 2층 한 켠에는 작은 전시 공간이 있습니다. 어느 날은 사진 전시가, 또 어느 날은 소규모 공연이나 작가와의 만남이 열리곤 하죠. 서점 직원에게 추천을 부탁하면 무조건 책을 파는 게 아니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에 “그럼 이런 책이 좋겠네요”라며 조심스럽게 건넵니다.

현지인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문화를 실험하고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예술계 종사자들이 자주 찾는다는 점에서 ‘살아 있는 지식의 공간’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Le Monte-en-l’air는 책과 예술, 사람의 경계가 사라지는 특별한 공간으로, 파리를 다시 사랑하게 만드는 장소입니다.

 

Librairie L’Attrape-Cœurs

‘꿈을 잡는 서점’이라는 이름을 가진 L’Attrape-Cœurs는 몽마르트르 언덕의 한적한 골목에 숨어 있습니다. 사크레쾨르 대성당에서 조금만 걸어 내려오면 만나게 되는 이 작은 서점은, 외부 간판도 작고 유리창에는 손글씨로 책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마치 오래된 영화를 보는 듯한 낭만적인 공간이 펼쳐집니다. 좁은 공간에는 주로 현지 문학, 시집, 독립출판 에세이가 가득하며, 각 책마다 서점 주인이 남긴 짧은 메모가 붙어 있어 매우 정겹습니다.

서점 주인은 50대의 조용한 프랑스인이며, 모든 책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설명해줍니다. 그는 “좋은 책은 당신이 먼저 말을 걸지 않아도 먼저 다가옵니다”라는 인상적인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서점에서는 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책에게 ‘발견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서가 사이에 놓인 작은 의자에 앉아 천천히 책을 넘기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됩니다.

특히 이곳은 시집 섹션이 인상적입니다. 프랑스 현대 시인들의 작품은 물론, 번역된 동양 시집도 일부 구비되어 있었는데, 심지어 한국 시집도 한두 권 눈에 띄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조용히 웃는 프랑스인을 보면, 이 공간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초월한 ‘공감의 장소’라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조용히 드나드는 이곳은, 파리의 정제된 문학적 감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Librairie Yvon Lambert 

마레 지구에 자리한 Yvon Lambert 서점은, 사실 원래는 갤러리로 더 유명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예술 서적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점으로 변모하였고, 지금은 파리의 감각적인 예술인과 디자이너들이 애정하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순백의 벽, 정갈한 조명, 그리고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아트북, 사진집, 비평서들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일반적인 서점과 달리 서가 대신 낮은 선반과 넓은 여백이 있어, 책 한 권 한 권이 예술작품처럼 느껴집니다.

Yvon Lambert는 ‘예술 서점’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책이라는 오브제를 전시하는 장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상업적 목적이 강한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책의 제작 방식과 편집 디자인, 종이 질감까지 고려한 큐레이션이 돋보입니다. 매달 작가와 디자이너의 협업 전시나 북런칭 이벤트가 열리며, 책을 통한 예술 커뮤니티의 연결이 자연스럽게 이뤄집니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창작자와 연결되는 참여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 서점은 독특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점 직원은 전문적인 지식과 함께 굉장히 따뜻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 낯선 여행자에게도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책을 판다기보다, 책이 가진 철학을 공유하죠.”라는 말은 이곳의 운영 철학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파리의 세련된 예술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Yvon Lambert는, 책을 예술처럼 바라보는 이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장소입니다.

 

파리의 뒷골목에서 만난 독립 서점들은 그 어떤 박물관이나 관광 명소보다 더 진짜 파리를 보여주는 장소였습니다. 각 서점은 서로 다른 색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책과 사람이 만나 이야기가 탄생하는 공간’이라는 본질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파리 여행에서는 지도에 없는 길을 따라 걸으며, 조용한 책방 하나쯤 발견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