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다 보면 서점 자체에도 애정을 갖게 된다. 특히 독립 서점에서는 책 외에도 공간의 개성을 담은 굿즈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나는 여행지마다 독립 서점을 찾고, 거기서 발견한 굿즈를 하나씩 모으는 습관이 생겼다.
엽서 – 작은 종이 위에 담긴 서점의 온도
독립 서점에서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자주 접하게 되는 굿즈는 단연 엽서다. 작은 종이 한 장에 인쇄된 그림, 문장, 디자인은 그 공간의 분위기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처음엔 단순히 ‘예쁘다’는 이유로 하나둘 구매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엽서는 그 서점을 기억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파리의 어느 골목 서점에서 샀던 엽서는 책장을 넘기던 고요한 오후를 떠오르게 했고, 교토의 엽서는 잉크 냄새와 나무 바닥의 삐걱임을 같이 품고 있었다. 각 서점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엽서를 만든다. 어떤 곳은 자체 디자인을 하고, 어떤 곳은 지역 작가와 협업해 한정판으로 제작하며, 어떤 서점은 특정 책과 연결되는 이미지를 엽서에 담기도 한다. 그래서 엽서를 보면 그 서점이 어떤 철학과 취향을 지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엽서의 가격은 대개 1,000~2,000원대로 부담이 적고, 가볍게 휴대할 수 있어서 여행 중 짐이 되지도 않는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 엽서를 책갈피로 쓰거나, 액자에 넣어 책상 옆 벽에 붙인다. 그중 일부는 친구에게 편지 대신 보냈고, 일부는 그대로 상자에 넣어 모아두었다. 그렇게 쌓인 엽서는 어느새 ‘내가 다녀온 서점 지도’처럼 되었다. 그곳에서 어떤 책을 샀는지 기억나지 않아도, 그 엽서를 보면 당시의 공기와 대화, 눈빛이 떠오른다. 누군가는 메모지나 책 표지를 모으겠지만, 나에게는 이 10×15cm의 종이가 가장 사적인 기억 수단이 되었다. 엽서는 단지 디자인이 예뻐서가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여행의 일부이기 때문에 매번 소중하게 고르게 된다.
북마크 – 책 사이에 숨겨진 감성의 조각
책을 읽다 보면 문득 페이지 사이에 끼운 북마크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그건 단순한 위치 표시를 넘어, 읽던 당시의 분위기와 감정을 다시 불러내는 일종의 장치처럼 작용한다. 독립 서점의 북마크는 대형 서점의 판촉용과는 전혀 다르다. 재질부터 다르고, 디자인에는 서점 특유의 미감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암스테르담의 한 서점에서는 헌책에서 오려낸 구절로 만든 북마크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종이마다 서로 다른 문장이 적혀 있었다. 교토의 ‘가가쿠도’에서는 서점 이름과 책장 일러스트가 함께 새겨진 가죽 북마크를 소량 제작해 팔았고, 서울의 한 작은 서점에선 지역 캘리그래퍼가 손글씨로 쓴 문장을 라미네이트 처리해 북마크로 만들었다. 북마크는 가볍지만, 거기 담긴 정성과 창의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그 책과 어울리는 북마크를 골라 쓴다. 어떤 날엔 몽환적인 일러스트가 있는 북마크를 끼우고, 또 어떤 날엔 짧은 문장이 적힌 북마크가 위로가 되어준다. 때로는 같은 책을 다시 읽게 될 때 그 북마크를 꺼내며 과거의 나와 조우하는 느낌도 든다. 굿즈로서의 북마크는 작은 가격으로 큰 감정의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서점에서 북마크를 고를 땐 단순히 기능보다 그 책방이 나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는지를 떠올린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북마크는 남고, 그건 다시 다음 책으로 이어지는 작은 연결고리가 된다. 결국 독립 서점의 북마크는 단순한 물건을 넘어서, 책과 나, 그리고 서점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토트백 – 들고 다니는 서점의 정체성
굿즈 중에서 가장 ‘외부로 노출되는’ 역할을 하는 건 단연 토트백이다. 독립 서점에서 만든 토트백은 단순한 가방이 아니라 그 서점의 정체성, 세계관, 감성을 들고 다니는 상징에 가깝다. 나는 여행 중 책을 몇 권 샀을 때 우연히 구매한 서점 토트백이 계기가 되어, 그 이후로는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보이면 꼭 하나씩 사게 되었다. 토트백은 실용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두꺼운 책을 넣어도 끄떡없는 튼튼한 캔버스 재질, 간단한 문구 하나로 확실한 인상을 주는 레터링, 혹은 책방 내부 구조를 담은 드로잉 등, 디자인 요소 하나하나에 서점의 취향이 드러난다. 어떤 가방은 한 면에 작은 로고만 새겨 미니멀한 인상을 주고, 어떤 건 한쪽 면 전체에 대담한 문장을 넣어 시선을 끌기도 한다. 특히 ‘베를린의 Shakespeare and Sons’나 ‘도쿄의 Flying Books’처럼 이름이 잘 알려진 독립 서점들의 토트백은 현지에서는 패션 아이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책방 주인들이 가방 제작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그 굿즈가 서점의 이름을 들고 다닐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토트백은 길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서점의 존재를 알리고, 다른 책 애호가와 조용한 연결감을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나는 공원에서 ‘나도 거기 다녀왔어요’라며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 경험이 있었다. 그런 순간마다, 가방은 단순한 소지품이 아니라 대화를 여는 도구가 된다. 무엇보다도 서점에서 고른 책을 그 서점의 가방에 담아오는 일은 기분 좋은 완성처럼 느껴진다. 책과 함께 돌아오는 길, 그 가방은 하루의 기억을 담아 주는 부드러운 용기였다.
굿즈를 수집하는 일은 단순한 물건 모으기가 아니라, 서점을 기억하는 방법 중 하나다. 엽서 한 장, 북마크 하나, 가방 하나에도 그 공간의 공기와 감정이 녹아 있다. 책보다 오래 남는 건 때로, 그 책을 만난 장소와 그것을 담아온 작은 조각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