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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면

by nangdream 2025. 6. 28.

“서점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면?” 일본에서는 이 상상이 현실입니다. 단순히 책을 사고 읽는 공간을 넘어서, 하루를 머무는 공간으로 진화한 서점들이 등장하고 있죠. 오늘은 일본에서만 가능한 ‘서점 숙박’이라는 특별한 문화를 중심으로, 그 배경과 사례들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서점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면

 

책과 함께 잠드는 공간 . '북 앤 베드 도쿄'의 탄생 배경

2015년, 도쿄 이케부쿠로에 생긴 한 서점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북 앤 베드 도쿄. 이곳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책을 읽다 잠들 수 있는 호스텔형 북스페이스입니다. 수백 권의 책이 벽면을 따라 빼곡히 진열된 공간 속에서, 침대 대신 책장 틈에 마련된 작은 캡슐 공간에서 숙박이 가능합니다.이 독특한 콘셉트는 ‘책을 사는 공간’이 아니라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체험형 공간을 지향하며 기획되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드는 경험을 팔자”는 이들의 캐치프레이즈는, 피로한 현대인들에게 책과 수면이라는 최고의 조합을 제시한 셈이죠.이 공간은 관광객뿐 아니라, 일본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하룻밤 도피처'처럼 인식됩니다. 아늑한 조명, 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절제된 음악과 차분한 분위기는 일종의 디지털 디톡스를 경험하게 해줍니다. 체크인과 동시에 스마트폰은 가방 속에,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리는 ‘아날로그 전환’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곳입니다.‘북 앤 베드 도쿄’의 성공 이후, 일본 각지에 비슷한 형태의 숙박형 서점이 생겨났고, 이 트렌드는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이 결합한 서점의 새로운 모델로 떠올랐습니다. 책을 고르고, 읽고, 머물며, 잊지 못할 경험을 쌓는 장소. 이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책을 중심으로 한 일상 체험’이라는 일본 특유의 섬세한 감각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지역과 연결된 공간. 교토·후쿠오카의 서점 숙소들

이제 ‘책+숙박’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지역 문화와 결합한 공간 전략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교토와 후쿠오카입니다. 교토에는 레터즈 호텔이라는 이름의 소형 숙소가 있습니다. 이곳은 숙박객이 체크인하면 먼저 서재로 안내받습니다. 각 객실마다 다른 책이 큐레이션되어 있고, 숙박 기간 동안 그 책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설계되어 있죠. 일반 관광호텔과 다르게, 여기는 “책을 읽는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후기가 자주 보입니다. ‘책과 나’ 사이의 대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조용한 공간이죠. 한편, 후쿠오카에는 지역 서점과 협업한 서점 연계 게스트하우스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점 '백북스'는 게스트하우스와 연결되어 있어, 지역 출판물이나 큐레이션 서적을 자유롭게 열람하고 구매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서점은 매달 지역 작가를 초청한 미니 북토크도 열어, 책을 매개로 지역 커뮤니티를 자연스럽게 연결합니다. 이처럼 일본의 숙박형 서점은 단순한 콘셉트 공간을 넘어, 지역성과 감성, 독립출판까지 아우르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도시의 바쁜 리듬 속에서 멈춰설 수 있는 장소, 그리고 내가 머무는 공간이 나를 조금씩 바꾸는 경험—그것이 바로 이 서점 숙소들이 주는 매력입니다.

 

책이 주는 휴식, 공간이 주는 위로. 일본 서점 문화의 진화

서점에서 숙박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처음엔 다소 기이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이색 콘셉트’가 아니라, 책이라는 매체가 오늘날 어떻게 살아남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일본의 서점들은 그 답을 ‘경험’에서 찾았습니다. 특히 ‘서점+숙소’의 융합은 현대인의 쉼에 대한 감각과 맞닿아 있습니다. 단순히 책을 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 머물며 책을 천천히 읽고, 책 속의 시간에 나를 맡길 수 있게 하는 경험. 이것은 도시의 번잡함 속에서 시간을 잠시 멈추게 만드는 일종의 감각적 회복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런 변화는 책에 대한 인식도 함께 바꾸고 있습니다. 책은 이제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머무는 존재'로 바뀌고 있습니다. 일본 서점은 더 이상 “읽을 거리”만 파는 곳이 아닙니다. 독서와 감정, 휴식과 체험이 교차하는 하이브리드 공간이자, 일상과 여행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실험장이 되고 있는 것이죠. 또한 이 변화는 젊은 층의 독서 문화를 다시 활성화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책이 '재미없고 따분한 것'이 아닌,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콘텐츠로 경험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시작이 바로 ‘하룻밤을 책 속에서 보내는 경험’이었다는 점에서, 일본의 서점 문화는 새로운 독서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점에서 숙박이 가능하다는 말이 낯설게 들리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일본의 독립 서점들은 책이라는 정적인 매체를 살아있는 경험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책과 잠, 책과 여행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금 책을 좋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