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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서점의 본질

by nangdream 2025. 6. 26.

우리는 흔히 책을 사러 갈 때 ‘대형 서점’부터 떠올립니다. 그러나 전 세계에는 대형 체인 서점 없이도 풍부한 독서 생태계를 유지하는 나라들이 존재합니다. 핀란드와 네덜란드, 이 두 나라의 독립 서점들이 어떻게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진짜 서점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진짜 서점의 본질

 

핀란드 마을 중심의 책방, 공동체의 품으로 들어온 서점

핀란드에는 ‘알라딘’도 ‘예스24’도 없습니다. 헬싱키에 대형 종합서점 몇 곳이 있지만, 전국적으로는 소규모 독립 서점들이 도서 유통과 문화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서점이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일부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대표적인 예가 핀란드 남부의 소도시 포르보에 위치한 애나스 북스토어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서점이 아닌 지역 주민들의 문화 공간이자 소셜 커뮤니티 허브로 기능합니다. 마을 작가의 북토크,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 모임, 핀란드어 회화 클래스 등 서점에서 열리는 활동은 책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적 연결을 만들어냅니다. 이 서점의 운영자는 “책을 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사람을 모읍니다.”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핀란드 독립 서점들은 지역 도서관과 협업하거나, 공공기관과 연계한 문해력 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서점은 지식의 거점’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어, 독립 서점의 공공적 기능을 지원하고 있죠. 특히 핀란드의 독립 서점들은 도서 유통과 유행보다, ‘지속 가능한 독서’를 목표로 책을 고르고 소개합니다. 책을 파는 것보다 책을 고르게 만드는 것이 이들의 역할인 셈입니다. 덕분에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문해율과 도서관 이용률을 기록하면서도, 대형 서점 없이도 책이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리는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네덜란드 책보다 ‘공간’을 큐레이션하는 유럽식 독립 서점들

네덜란드의 독립 서점은 단순히 책만을 판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책을 중심으로 한 문화 공간을 큐레이션하는 방식으로 지역 사회와 소통합니다. 암스테르담, 위트레흐트, 흐로닝언 등 도시마다 고유의 콘셉트를 가진 서점들이 존재하며, 이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독서를 해석하고 시도합니다. 예를 들어 암스테르담의 대표적인 독립 서점 아테네움 북핸델은 각국 문학서적과 철학서, 사회학 중심의 큐레이션으로 유명합니다. 이곳은 단순히 책을 진열하는 공간이 아니라, 매월 다양한 주제의 북토크, 저자 인터뷰, 심야 독서 모임을 운영하며 출판과 토론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또한 위트레흐트의 브로덜릭룩서스 같은 서점은 책방지기들의 큐레이션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며, 종종 ‘책을 사러 간다기보다 책에 끌려 들어가는 곳’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여긴 책보다 책방 자체가 기억되는 공간입니다. “이 도시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품격이 달라진다”는 손님 리뷰가 말해주는 것처럼, 공간이 도시의 문화 자존심 역할을 하는 서점이죠. 이런 독립 서점들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네덜란드 출판 생태계의 ‘가격 통제 정책’도 작용합니다. 네덜란드에서는 도서 정가제를 엄격히 유지해 대형 체인의 가격 경쟁이 일어날 수 없는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역 서점들이 고유의 큐레이션과 콘텐츠로 경쟁하며 문화적 깊이를 키워가는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대신’이 없는 나라의 서점 독립 서점이 중심이 되는 독서 생태계

핀란드와 네덜란드 모두 공통적으로 ‘대형 체인’이라는 존재가 거의 없거나 매우 희박합니다. 그 말은 곧, 독립 서점이 ‘보완재’가 아니라 ‘중심축’이라는 의미입니다. 대형 서점이 독립 서점의 손님을 가져가는 구조가 아니라, 애초에 서점 생태계 자체가 다르게 설계된 것입니다. 이 나라들에서는 독립 서점이 문해력과 문화의 첫 관문입니다. 책을 고르고, 독자와 대화하고, 때론 책을 직접 제작하는 등 출판과 유통, 교육, 커뮤니티를 아우르는 역할을 독립 서점이 도맡습니다. 한국에서처럼 ‘독립 서점’이 마이너 문화가 아닌, 당연한 일상으로 자리 잡은 것이죠. 핀란드의 어떤 서점에서는 아이들에게 무료로 그림책을 나눠주고, 네덜란드의 서점에서는 하루 중 특정 시간에 조용히 ‘낭독 방송’을 틀어줍니다. 어떤 책방에서는 지역 농부와 협업해 계절에 따라 서점에서 미니 팜마켓을 열기도 하고요.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방식이 참 다양하지만, 하나는 분명합니다. 이 나라들에서는 독립 서점이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문화 플랫폼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인상 깊은 점은, 이곳에서는 ‘서점이 사라질까 봐 걱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곧, 독립 서점이 당연한 문화 기반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에게도 대형 서점이 아닌 ‘동네 서점 중심의 생태계’가 가능할지 묻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죠.


핀란드와 네덜란드의 독립 서점들은 ‘작아서 특별한 공간’이 아닙니다. 그들은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기본 단위로 작동하며, 도시 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대형 체인이 없는 나라에서, 독립 서점은 그 자체로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 작지만 가장 단단한 방식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