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서점은 책을 팔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일까요? 아니면, 책을 매개로 사람과 생각이 머무는 장소일까요? 이 질문을 안고 만난 몇 명의 서점 주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왜 이 일을 계속하느냐”는 물음에 답하고 있었습니다.
책은 팔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서점 서울 연희동 책방 연희
서울 연희동의 작은 주택 골목에 자리 잡은 ‘책방 연희’는 언뜻 보면 여느 독립 서점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좁은 입구, 책이 빽빽한 진열대, 따뜻한 조명 아래의 테이블. 하지만 이 공간을 운영하는 김소정 대표는 처음부터 ‘이윤보다 감정이 먼저 오는 공간’을 상상했다고 말합니다. “책을 파는 건 부차적인 일입니다. 이 공간에서 누군가 울고 가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이 서점에서는 책이 너무 많이 팔리면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고 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책이 재고가 부족해지면, 그 책을 누군가 더 만나지 못할까 봐 아쉬워요. 상업적 성공보다는, 그 책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닿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런 이유로 김 대표는 책을 주제별로 큐레이션하기보다는, 그 계절이나 자신이 겪고 있는 감정에 따라 책장을 바꾸곤 합니다. ‘책방 연희’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손님이 책을 사지 않아도 환영받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책을 사지 않고 2시간 머물다 가도 괜찮아요. 누군가는 여기를 도서관처럼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는 쉬어가는 벤치처럼 기억하기도 하죠. 저는 그 둘 다 좋다고 생각해요.” 책방은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김소정 대표에게는 ‘말을 걸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의 책들은 목소리가 크기보다, 말 없는 위로를 건넬 줄 압니다. 독립 서점의 존재 이유는 아마도 이런 조용한 진심에서 출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출판 생태계를 다시 그리는 서점 부산의 스토리지북앤필름
부산 구도심에서 시작된 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은 단순한 책방을 넘어, 출판의 흐름 자체를 고민하는 공간입니다. 이곳을 운영하는 이현석 대표는 원래 영상 디자이너 출신이었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더 좋은 형태로 전하고 싶어서 책을 시작하게 됐어요. 누군가에게는 영상이, 또 누군가에게는 문장이 더 오래 남을 수 있으니까요. 이 서점의 특징은 매우 선명합니다. 책이 단지 진열된 것이 아니라, ‘기획된 큐레이션’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시즌별 주제를 정하고, 그 안에 맞는 독립출판물과 소규모 출판사의 책들을 골라 배치합니다. 예를 들어 ‘도시의 밤’이라는 테마에는 서울과 부산의 밤 산책기, 밤에 쓰인 시집, 그리고 어두운 골목을 담은 사진집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책들은 서로를 설명해주며, 독자에게 하나의 ‘이야기 전시’를 구성합니다. 이 대표는 출판 자체를 하나의 ‘문화 활동’으로 봅니다. 우리는 책을 팔기도 하지만, 동시에 책을 만들어보기도 하죠. 글쓰기 워크숍, 자가 출판 수업, 리소 인쇄 프로젝트까지. 출판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생활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스토리지북앤필름은 독자와 창작자의 경계를 허물어, 서점이 곧 출판사가 되고, 손님이 곧 저자가 되는 구조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책을 사는 사람이 ‘소비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됩니다. 독립 서점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새로운 가능성의 회로를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한 도시의 감정을 수집하는 서점 교토의 가가쿠도
일본 교토의 주택가에 자리한 작은 서점 ‘가가쿠도’는 흔히 ‘조용한 책방’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곳은 매우 섬세하게 의도된 공간입니다. 운영자 미즈키 씨는 책방이 아니라 ‘감정의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책은 말이 없어요. 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죠.” 가가쿠도는 일반적인 장르 분류가 없습니다. 책장은 ‘소리’, ‘눈물’, ‘흔들림’, ‘여름의 기운’ 같은 주제로 구성되어 있고, 각 책마다 운영자의 손글씨 메모가 붙어 있습니다. “이 책은 무기력한 날에 좋습니다.” “이 책은 나를 많이 울게 했어요.” 이처럼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추천 방식은, 기계적으로 분류된 대형 서점과 완전히 다릅니다. 그녀는 “책을 고르는 건 결국 자기 감정을 만지는 일이니까요”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이 서점은 조용하지만 깊이 있고, 손님들은 대부분 오래 머물며 책장을 넘깁니다. 특별히 판매가 많은 것도 아니고, 회전율이 높은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책방입니다. 미즈키 씨는 말합니다. “가가쿠도는 도시에 흐르는 감정을 붙잡는 책방이에요. 이곳에서 만나는 책은, 어쩌면 이 도시의 마음 그 자체일지도 모르죠.” 서점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때로는 수익이나 규모가 아니라, 도시와 감정을 연결하는 아주 작은 다리이기 때문입니다.
독립 서점은 단지 책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 감정, 기록, 철학이 머무는 공간입니다. 그 작은 서점들 안에는, 세상에 없는 질문과 대답이 숨어 있습니다. "왜 이 서점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가장 따뜻한 응답처럼요.